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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안토니 존스톤

크라쿨브, 2504

"우린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 전부 포를 맡아!"

브라흐 트라이커 대위는 중화기 플랫폼에서 급히 몸을 돌리고는 중앙 지휘부로 달려갔다. 육중한 CMC 전투복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브라흐는 한 걸음마다 세 계단을 뛰어올랐다. 등 뒤에서는 발포음이 산발적으로 들려왔다. 30분 동안 의료선들이 줄을 지어 크라쿨브 기지에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해병들은 자신들이 그 다음인줄 알았지만, 방금 그들에게 위치를 사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크라쿨브는 자치령 영역 외곽에 위치한 비밀 위성으로, 저그의 침공을 사전에 경고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첫 번째 조우 전쟁 이후, 기지가 처음 세워진 무렵에는 의료선들에 모든 사람들이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기지가 커지자 인구가 많아지면서 의료선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버렸다. 브라흐는 사람들이 현실에 안주하면서 체중이 늘어난 까닭이라고 하지만.

전투 요원과 핵심 인물을 제외하고 모든 자들을 대피시키라고 소령이 명령했다. 브라흐도 소령의 결정에 동의했지만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첫 공격이 감행된 때는 해질녘이었다. 말이 안 된다. 명색이 감시 위성인데 왜 공격을 미리 감지하지 못했을까? 이유가 어찌 됐든 10분만에 위성의 인구 중 4분의1이 사망했다. 생존자들은 모두 대피했고 단 한 대의 의료선만이 남았다. 그리고 구축함이 도달할 때까지 백 여명의 해병과 함께 저그의 대대적인 침공에 맞서야 한다.

출입구가 열리자 브라흐는 중앙 지휘부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구축함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거지?"

사령관 리 트라이커 소령이 상황 콘솔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여섯 시간입니다."

"여섯 시간이라니! 리, 도저히 그때까지는 안 돼! 크라쿨브는 이런 대규모 공격에 대처할 수단이 없다고!"

중앙 지휘부를 운용하는 인원들의 대부분은 대피를 마치고 대여섯 명만이 남아 전술 명령을 이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여섯 명 모두가 때마침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양 콘솔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리는 브라흐를 향해 냉정한 시선을 보냈다. 브라흐는 한숨을 쉬었다. 그의 아내에게 딱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이것이었다. 그녀는 절대로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다. 목소리를 높인 적도 없다. 누가 봐도 그럴만한 상황에서도 말이다. 가끔씩 브라흐는 리를 부여잡고 흔들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보라고 다그치고 싶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평이한 톤으로 그녀가 말했다. "항복할까요? 백기를 흔들면 저그가 회개하여 내면에 잠들어 있는 평화주의적 본능을 깨우치리라고 보십니까?"

"반격하자는 거지. 여기에 틀어박혀 놈들이 오는 걸 기다릴 수 만은 없어."

"밤까마귀 정찰대가 이미 나가서 상황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보고가 들어오기 전에는 아무도 못 나갑니다. 그러니 여기 와서 저를 좀 도와주시죠. 아니면 당신의 특기인 사기를 북돋는 언어폭력을 대원들에게 행사하러 가시든지요."

잠시 멈칫한 브라흐는 곧 리 옆에 섰다. 그리고는 전투복으로 덮인 손을 내밀어 장갑을 낀 그녀의 손을 붙잡고 부드럽게 쥐었다. "미안해." 그가 속삭였다.

피식하는 웃음을 건넨 그녀는 다시 콘솔을 바라보았다. "여기 이 대형을 보세요…"

* * *

가르잭스, 2501

정오 1시간 전. 일리아나 조레스는 보안 모니터의 전원을 껐다. 생태관 초소들을 모두 둘러보고 20분이 지났다. 예정보다 일찍이고 아무런 이상도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가르잭스는 조그만 행성계에 있는 작은 행성이었다. 테란의 영토 가장자리에 있어 시끌벅적한 자치령의 소식도 들리지 않는 가르잭스에는 숲속의 야생 짐승 이상의 지능을 가진 생물이 없다.

바로 그것이 일리아나가 회사에 요구한 바였다. 전직 해병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녀는 전쟁에서 온갖 일을 다 겪었다. 경제 생활에 도움이 될 능력이 없던 일리아나는 프리랜서 경비원이라는 일을 맡게 되었고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가르잭스 지면의 대부분은 냉각복 없이는 견디기 힘들 만큼 습한 열대 우림 지역이고, 행성의 태반을 차지하는 바다조차도 웬만한 온탕에 버금갈 정도로 뜨겁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무런 사건도, 흥미거리도 없다. 오직 그녀와 열 명의 과학자들, 그리고 열기. 일리아나가 딱 원하는 것이다.

* * *

베헤모스는 신음 소리를 내며 전투에서 얻은 상처의 고통을 떨쳐내기 위해 이리저리로 육중한 몸집을 흔들었다. 괴수는 코프룰루 구역의 외곽에서 프로토스 함대의 기습 공격을 받았고,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전투는 끝났지만 베헤모스는 급격하게 체력을 잃고 있었다. 괴수의 목숨은 중요하지 않지만 그 안에는 수 천의 저그가 있다. 베헤모스가 쓰러진다면 그들 또한 위험에 처하게 된다. 우주를 넘나드는 것은 괴수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늙은 베헤모스는 힘을 축적하기 위해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진공 상태의 우주를 벗어나야 한다.

케리건은 베헤모스를 조종하여 전투에서 승리하였지만 괴수가 부상당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괴수의 지친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녀는 괴수가 쉴만한 장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곧장 앞에 있는 행성이 눈에 들어왔다. 행성의 대기는 대부분 질소와 산소로 이루어져 있었고 탄소 기반의 생명체들이 살고 있었다. 그 생명체들을 먹어 치워 베헤모스와 수 천의 저그들은 회복하고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케리건은 목적지로 베헤모스를 이끌었다.

시간이 흘렀다. 한 시간, 하루, 일주일, 한 달? 너무나도 노령한 존재에게 시간이란 큰 의미가 없다. 베헤모스는 행성의 중력 영향권에 도달했다. 대기를 뒤덮은 두꺼운 구름이 지면을 가렸다. 구름을 뚫고 하강한 베헤모스는 행성을 살펴보았다. 비슷한 행성을 본 적이 있다. 산과 나무, 그리고 녹색이 가득한 땅. 한때 이런 행성에서 쉰 적이 있다. 풍부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을 것이다. 포유류 생물체도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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