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인은 슬프게 미소 지으며 거대한 손을 하뮬의 어깨에 얹었다. “시간을 주시지요, 하뮬. 가로쉬와 같은 이들의 시간은 덧없을 만큼 빠르게 흘러갑니다. 언젠가 정신을 차리거나, 아니면 저대로 목을 매달 겁니다. 그의 미래에는 그 두 가지 선택밖에 없습니다. 어느 쪽이건, 인내심이 우릴 이롭게 할 겁니다.”
하뮬은 머리를 비우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우린 오크가 이 세계에 도착하기 전부터 살아왔다. 너도 기억하겠지. 우리 종족을 도와준 스랄에게 네 아버지는 빚을 졌다고 했었지만, 이제는 호드도 달라졌다. 다른 타우렌들이 쑥덕대는 소리가 들리더구나. 어떤 이들은 지금의 호드에 우리가 계속 참여하고 있어야만 하는 건지 의아해하고 있다.” 하뮬은 코웃음을 쳤다. “호드는 정말 많은 일을 했고, 우리도 많은 빚을 지고 있어. 하지만 우리 내부의 그런 의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너도 인정하겠지.”
바인은 책장에서 지도 한 장을 꺼내서 멀고어에 있는 모든 우물의 위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말씀하신 대로 저희 아버님께서는 스랄에게 빚을 지고 계셨죠. 하지만 그분은 자신이 직접 일으켜 세운 호드를 믿고 계시기도 했습니다. 이제 아버님께서는 떠나셨고, 우리도 이렇게 변화를 맞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호드를 믿습니다.”
곧 멀고어 전역의 여러 수원에서 물을 실은 짐마차들이 오그리마를 향해 이동하는 모습이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오그리마에서 물은 여러 거주지로 배분되었고, 듀로타 거주민들의 가정에는 다시 한 번 신선한 물이 공급되었다. 도적떼에 의한 공습이 있었다는 소식이 이따금 들려왔지만, 전반적으로 물 공급에는 크게 우려할 부분이 없었다.
그래서 멀고어에서 발생한 첫 번째 습격 사건에 바인은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영토 한가운데서 자행된 만행이었을 뿐 아니라, 잔혹한 학살이기도 했다. 사건을 조사해 봐도 공격자에 대한 단서나 그들의 동기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시체에서 없어진 물품도 없었고, 짐마차는 파괴되었지만 그 안에는 주의를 끌 만한 물품도 전혀 없었다. 사실 수레는 물주머니를 운반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풀밭에 난 혈흔을 보면 공격자들이 일부 시체를 끌고 간 흔적도 있었지만, 나머지 모두의 시체는 현장에서 발견되었다.
바인은 당혹스러웠다. 처음에는 추방당한 그림토템 부족의 복수가 아닐까 우려했지만, 먼길잡이 정찰병들은 그림토템이 관련된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바인이 사건과 관련된 보고서를 살펴보고 있던 어느 날, 오크 전령 하나가 다가와 헛기침을 했다. 바인은 고개를 들고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래, 이 누추한 곳까지 어쩐 일이신가?”
“대족장님의 전갈입니다.” 전령은 말려 있던 편지를 펴서 읽기 시작했다. “타우렌의 대부족장 바인 블러드후프에게, 호드의 대족장 가로쉬 헬스크림이 전한다. 물 공급이 차질 없이 계속되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에 전달받은 물이 알 수 없는 성분에 오염되어 있다. 이 문제를 바로잡길 기대하겠다. 지금 즉시.”
바인은 근심스럽게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최근이라면 윈터후프 우물에서 채취한 물인데... 가로쉬에게 내가 직접 확인하겠다고 전하라.” 이 말을 들은 전령은 돌아갔고, 바인은 썬더 블러프 관리를 타우렌 용사 중 하나에게 맡긴 후, 멀고어 남부로의 여행을 준비했다.
바인은 엄숙하게 우물 주변의 시체들을 관찰했다. 완연한 살육의 현장이었다. 세 대의 짐마차가 손쓸 수 없을 만큼 부서졌고, 못 박혀 있지 않은 모든 것은 도둑맞은 채였다. 짐마차가 운반하던 세 개의 물 주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마차를 끌던 코도 역시 사라졌고, 마차 경비병 여덟 명은 보호하던 작업자 여섯 명을 둥글게 둘러싼 채 숨져 있었다. 이번에는 경비병들도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던 덕분에 최소 십여 마리의 가시멧돼지 시체도 주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여기 가시멧돼지들이 더 강하게 무장했군. 저 방어구 보이나? 호드 여러 종족의 방어구를 짜집기해서 만든 거야. 이렇게 조직화된 가시멧돼지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네.” 바인은 생각에 잠겼다. “멀고어의 평화를 위협하는 장애물은 언제나 고집스러운 가시멧돼지였지. 아버님께서도 그들과는 대화하지 못하셨어. 하지만 그들의 지도자가 바뀌었다면, 이번에는 협상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바인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먼길잡이를 향해 돌아섰다. “나라체 야영지에 전갈을 보내서 칼날가시 협곡에 있는 가시멧돼지와 접촉을 시도하도록 하라. 살육을 살육으로 갚아서는 안 돼. 내 땅에서 전쟁을 확대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블러드후프 마을의 옛 거처에서 며칠간 머물겠다. 상황 변화에 대해 가능한 한 빨리 보고하도록.” 이 말과 함께 바인은 전령을 향해 돌아섰다. “이번 사건의 범인을 찾았고, 상황을 처리하고 있다고 가로쉬에게 전하라.”
가로쉬는 몇 시간 후 답을 보내왔다. 바인이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대족장은 병력을 쏟아 부어 영토를 되찾고 적을 모두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전갈은 이렇게 끝났다. ‘직접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라. 내가 할 테니.’
바인은 코웃음을 쳤다. “이래서는 안 돼. 또 한 번의 충돌은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로쉬가 알아주길 바랐는데... 알겠다. 가로쉬에게 제안은 고맙지만, 아직은 군사 작전을 벌일 필요가 없다고, 우선은 협상이 어떻게 풀려갈지 확인해야 한다고 전하라. 협상에 결실이 있길 대지모신께 기도할 수밖에...”
다음 날, 그 먼길잡이 정찰병이 바인의 옛 거처에 찾아왔다. “가시멧돼지 상황에 대해 추가로 알려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대부족장님.”
바인은 기대에 찬 모습이었다. “혹시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가시멧돼지들과 대화하려 시도했지만, 저희 사절은 눈에 띄는 즉시 공격을 받았습니다. 대화를 시도할 때마다 가시멧돼지의 피로 뒤덮인 채 돌아오곤 합니다.” 정찰병은 바인의 눈에 어린 실망한 기색을 보고 재빨리 덧붙였다. “하지만 피해자 수는 최소한으로 유지했습니다. 사절단은 퇴각하며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전투를 벌였습니다.”
바인은 한숨을 쉬었다. “좋아. 우선 협상 시도를 중단하라. 불필요하게 피를 흘리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그들이 이렇게 공격적으로 변한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바인의 조언자 한 명이 말을 꺼냈다. “대부족장님, 주제넘은 말씀입니다만, 소규모 병력으로 놈들의 거주지에 몰래 침입해 들어가서 지도자를 암살할 수도 있습니다. 놈들이 혼란에 빠지면 손쉽게 전멸시킬 수 있을 겁니다.”
“절대 안 될 말이오. 평화로운 방법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오. 군국주의적 행동의 유혹에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오. 그건 가로쉬의 방식이지, 내 방식은 아니오.”
그는 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먼길잡이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가서 내 말을 전하라. 내가 직접 허가하지 않는 한 누구도 가시멧돼지의 영토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이번의 새로운 위협에 대한 해결책을 내가 직접 찾아내겠다.” 정찰병은 달려갔고, 바인은 아버지의 집으로 왕복 여행을 준비했다.
바인은 천막을 나서기 전, 다시 한번 조언자들을 바라봤다. “세상이 갈라졌소. 얼라이언스가 우리 국경을 침입하고, 호드는 내부에서부터 곪아 무너져가고 있소. 난 유혈 사태가 아닌 다른 해결책을 시도하고 싶소.”
앞서 말했던 조언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동의하고 싶습니다만, 가시멧돼지들은 벌써 몇 년째 우리를 괴롭혀 온 적대적인 짐승입니다. 그런 평화도 그리 오래 계속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