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바리안 린 국왕을 깊은 잠에서 깨웠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으려니, 멀리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언젠가 들어봤던 소리. 그래서 두려움이 물밀듯이 찾아왔다.
바리안은 조심스럽게 문 앞으로 다가가, 광낸 떡갈나무로 만든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움직임도 발소리도 없었다. 그리고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성 밖 어딘가에서 군중이 환호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행사가 시작될 때까지 늦잠을 자버렸나?'
다시 이상한 물소리가 들렸다. 얼음장 같은 바닥에서 메아리치는 물기 어린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바리안은 천천히 문을 열고 복도를 내다봤다. 어둠고 조용했다. 횃불들도 희미하게 깜박이는 것만 같았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바리안은 지금 자기 안에서 무언가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낡은 것, 새로운 것, 어쩌면 오래 전에 잊었던 것이었다. 마치 어린 아이의... 공포 같았다.
그는 고개를 흔들어 머리를 비웠다. 그는 늑대 정령 로고쉬였다. 적과 아군 모두의 심장에 두려움을 심어 줬던 검투사였다. 그래도 그는 불안함과 위기감이라는 원초적 감정이 스며드는 것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복도로 나선 바리안은 경비병들이 자리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두 기억의 날 행사 때문에 바쁜가? 아니면 뭔가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그는 어두운 복도를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가, 스톰윈드 왕궁의 크고 익숙한 왕실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렇게 익숙했던 높다란 벽이 어딘가 달라 보였다. 더 크고, 더 짙은 그림자에 휩싸인 채 공허하기만 했다. 높다란 천정에 마치 화려한 거미줄처럼 걸린 휘장에는 황금색 사자 얼굴이 수놓아져 있었다. 스톰윈드 왕국의 자부심과 힘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다.
고화질 파일 다운로드 어둠 속에서 나지막한 울음 소리와 함께, 갑작스럽게 소란이 일었다. 바닥으로 향한 바리안의 눈에 핏자국이 방 가운데로 이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곳의 어둠 속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절박하게 다투는 모습이 보였다. 어둠에 눈이 익어가자, 무릎을 꿇은 피투성이 남자와 그의 앞에 선 검은 그림자처럼 보이는 거친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바리안은 그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뒤틀린 형체는 그녀의 비틀린 육신과 영혼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바로 반 드레나이, 반 오크인 가로나 하프오큰, 굴단의 뒤틀린 마음이 길러낸 암살자였다.
믿기 힘든 충격에 바리안이 잠시 멈춰서자, 반 오크의 칼날에서 신선한 피가 흘러내렸다. 피는 면도날처럼 뾰족한 칼끝에 도달한 후 떨어졌고, 대리석 바닥에 진홍빛 장미꽃잎 자국을 남기며 번졌다. 그순간, 기억의 홍수가 바리안을 덥쳤다. 눈에 익은 방어구. 왕의 의복. 피투성이 남자는 바로 자신의 아버지, 레인 국왕이었다!
가로나는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지고 눈물에 얼룩진 웃음을 보이며 바리안을 바라보고는, 재빨리 칼을 내리찔렀다. 번쩍이는 칼날이 어둠을 찢고 무릎 꿇은 국왕의 가슴 깊숙이 박혔다.
"안돼!" 바리안은 비명을 지르고, 피가 흥건한 바닥을 지나 아버지를 향해 달렸다. 그가 시들어버린 국왕의 육신을 끌어안는 순간 반 오크의 얼굴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버지." 바리안이 품 안의 국왕을 애처롭게 흔들며 말했다.
고통으로 경련하던 레인 국왕의 입이 벌어지며 따뜻한 피가 흘러나왔다. 악취를 풍기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늙은 국왕은 가까스로 몇 마디 말을 남겼다. "린 가문의 왕은... 항상 이렇게 끝나지... "
이 말만을 남긴 채, 레인의 눈동자는 뒤로 넘어가고 턱이 벌어지며 흉측한 표정만이 남았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경련이 거칠게 일었다. 바리안은 어떻게든 눈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하품하듯 벌어진 아버지의 입 안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흐려지는 황혼 속에서 반짝이며 꿈틀거렸다.
갑자기 죽은 국왕의 입에서 구더기가 쏟아져나왔다. 셀 수 없이 많은 벌레가 꿈틀거리며 레인 국왕의 잿빛 얼굴을 뒤덮었다. 바리안은 물러나려 했지만 구더기가 그 자신마저 뒤덮어 버렸고, 꾸룩거리는 구더기들은 바리안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는 사이 그의 육신을 먹어 치웠다.
바리안은 깜짝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끔찍한 비명이 아직도 귀에 생생했다. 그는 스톰윈드 왕궁 위층에 있는 자신의 방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높은 창에서는 따스한 햇볕과 함께 군중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기억의 날 축제는 이미 시작된 후였다.
그의 손에는 빛바랜 은 펜던트가 놓여 있었다. 뚜껑은 열쇠로 단단히 잠긴 채였다. 바리안은 이미 수천 번이나 그랬듯이 본능적으로 펜던트를 열어보려 했지만, 굳게 잠긴 뚜껑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